정장의 무게


처음 정장을 입었던 날이 생각난다. 날씨가 꽤 쌀쌀했던 가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첫 정장을 입는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기도 했던 것 같다. 백화점에서 정장을 사서 수선집에 가서 내 몸에 맞추어 줄이고, 그 옷을 입은 내 모습을 거울로 비추어 봤을 때 어딘지 모를 어색함만이 가득했었다.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나서 그때의 세세한 감정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진정으로 옷의 주인이 되진 못했었다. 아무것도 묻으면 안 될 것 같은 흰색 블라우스에 무릎 살짝 위로 올라오는 검정 치마, 그리고 구김이 갈세라 빳빳하게 다려 입었던 재킷과 8센티미터 남짓의 검정 구두. 모든 것이 나에겐 부담이었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고, 벗어나고 싶었다. 마치 엄마 옷을 몰래 입은 사춘기 소녀인 양, 겉은 어른의 행색을 하고 있었지만 속은 너무 여렸던 그런 사람이었다.


요즘은 정장을 입는 날들이 즐겁다. 물론 아직도 정장을 입는 날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제는 내 옷처럼 많이 자연스러워졌고, 옷으로 인해서 말과 행동 하나하나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이제야 정장의 무게를 감당할만한 '진짜 어른이 되었나?' 싶다. 언젠가 돈을 벌게 된다면 좋은 곳에 가서 부모님께 양복 한 벌을 맞춰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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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