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한 지 얼마 안되어서 4월 말쯤 영화를 보고왔는데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하느라 한달이 지나서야 리뷰를 쓴다.
영화 '은교'는 개봉 전부터 배우 김고은의 파격 노출로 이슈화 되었던 작품이었고
개인적으로 박범신 작가를 좋아했기에 영화를 보기 전 책부터 먼저 읽었다.
책과 영화는 분명 그 매체가 다르기에 같은 장면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책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다루어 졌던 부분이 영화에서는 조금 더 정교하게 다루어 질 수 있다고 본다.
세계적인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를 읽으면서 주인공 해리가 이 장면에서 어떻게 지팡이를 휘두를 것인지에 대한 상상은 독자라면 한번 쯤 가져볼 만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설 '은교'를 보면서 이 장면은 영화에서 어떤 식으로 묘사 될 때 가장 효과적으로 묘사될 수 있는지를 생각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든 전체적인 소감은 정말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물론 감독도 감독 나름의 이유에서 그리 했을테고 또 정지우 감독만의 영상미를 영화 안에 담으려고 노력 했지만
원작을 살리기에는 영화는 역부족이었다.
먼저 전체적인 시나리오가 원작의 스토리를 완전히 살리지 못했다.
70대 노인과 10대 소녀.
한낱 성욕으로만 치부될 수 있는 그러한 감정선이 소설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적요, 한은교, 서지우의 시선에서 본 여러 시점에서의 사건들은 어떤 장면에서는 은교로, 어떤 장면에서는 이적요 시인으로 작품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영화는, 본래 영화에서 상업성을 빼 놓을 순 없지만, 원작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부분 무시한 채
이적요, 한은교, 서지우의 관계를 한낱 10대 여고생에게 성적인 감정을 느끼는 70대 노인과 30대 작가로 묘사해 버렸다.
감독은 그렇게 해야 좀 더 자극적인 소재라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으로 생각했나?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던 '노란 머리 소년'이 영화에서는 전혀 다루어 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나는 스토리의 전개상 이 '노란 머리 소년'이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 뿐만 아니라 소설 '은교'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영화에서 아예 없었다는 것은 과연 감독이 이 작품을 얼마나 이해했는가의 문제로도 결부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인 영화의 연출, 특히 결말 부분에서 서지우는 이적요의 그러한 행동에 '분노'라는 감정 보다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더 우선시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지우는 분노에 차있다.
또한 은교가 책을 들고 서지우의 오피스텔로 찾아가는 장면, 그 안에서의 대사 등등...
이러한 왜곡된 연출 하나하나가 작품 원작의 의도를 망가뜨렸다고 본다.
배우 박해일.
물론 개인적으로 '살인의 추억'부터 좋아했던 배우고 연기력도 영화계에서 인정받은 배우지만
이 영화에 그가 맞는지는 의문이다.
70대 노인 역할을 맡은 박해일은 물론 특수 분장으로 겉모습은 그럴듯 하게 갖추었지만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닌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영화에 더욱 집중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캐럭터와 배우가 하나로 보이는 것이 아닌,
박해일은 너무나 유명한 배우였기 때문에 분명히 70대 노인을 연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감독은 그가 젊은 시절로 돌아가 은교를 안는 상상을 위해서 그를 캐스팅 했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 않았더라도 젊은 시절은 젊은시절대로, 늙은 시절은 늙은시절대로 촬영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배우 캐스팅도 영화의 아쉬운 부분 중 하나이다.
이적요의 서재나 은교의 첫 등장 같은 경우에는 정지우 감독 특유의 영상미가 보였던 부분이지만
정말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 '은교'를 본 사람들에겐 자극적인 소재의 그저그런 멜로, 드라마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작품이 주는 진정한 의미를 단지 영화를 통해서 깨닫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요소들이 있다.
다른 감독이었더라면 조금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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