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왜이리 빠른지, 일단위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 단위, 월 단위로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1년에 딱 한번, 일주일 휴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터 무엇에 대한 보상심리인지는 몰라도(아마 평소의 반복되는 단조로운 생활때문이 아닐까) 머리속엔 이미 휴가 때 뭘 하면 좋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 중국, 싱가폴, 태국, 인도네시아, 미국 동부, 캐나다 서부,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체코,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스위스, 헝가리, 벨기에, 독일 등등...

내 나이대 치고는 그래도 꽤 많은 나라에 여행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막상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는 싶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대만은 여름에 가기에는 너무 덥고, 습한데다 최근에 지진도 일어났다 해서 불안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은 되지 않고, 미국 서부도 운전 못하는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는 다소 심심해 보였기에, 지도를 띄워놓고 한참동안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여기저기 추천 받아보기도 했는데 작년에 꽤 오랫동안 싱가포르에 있었던지라, 베트남,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로의 여행은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여태까지 방문했던 곳 중엔 프라하와 체스키크룸로프가 best city 였는데, 나름의 공통점은 중세유럽의 느낌이 남아있는, 엄청나게 큰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위스 인터라켄의 대자연보다도 루체른의 아기자기함이 끌렸었고,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의 호수와 산보다도 마을의 구석진 좁은 골목길이 마음에 들었었으니까. 같은 맥락에서 에스토니아의 탈린도 꼭 가보고 싶은 도시 중 하나다. 산토리니, 카파도키아 등등 구글 지도에 버킷리스트라며 저장해 놓은 지역들을 로드뷰로 방문해보기도 하고 한참동안 웹서핑을 하던 와중에 눈에 띄게 된 아일랜드 더블린. 요즘 테러와 브렉시트의 여파로 유럽 전체가 흉흉하다는데 뭔가 섬나라라 혼자 여행하기에도 그다지 위험하지 않을 것 같아서 핀란드 헬싱키-에스토니아 탈린과 잠시 고민하다가 미련없이 더블린행 표를 티켓팅 했다.


인천공항에서 아일랜드 더블린까지는 직항이 없어 파리나 런던,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가야한다. 에어프랑스 홈페이지에서 성수기 치고 110만원대에, 괜찮게 표를 구했는데 코드쉐어를 하여 갈 때는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는 네덜란드 KLM항공, 올 때는 파리를 경유하는 대한항공을 이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왕복 대한항공이었는데 암스테르담에서 더블린 가는 에어링구스 비행기 경유에서 수화물 문제가 있어서 KLM 항공을 처음 이용해 보게 되었다. 작년에 프라하 갈 때는 체코항공, 돌아올때는 루프트한자를 이용했는데 외국 항공사도 꽤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평소에는 택시비가 아까워 꾸역꾸역 걸어다니거나 버스타고 다니고, 백화점에서 옷도 못사는 짠순이지만 여행 갈 때 만큼은 조금 더 여유를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숙박비 좀 아껴보려고 게스트하우스 24인실과 6인실, 4인실을 고민하는 나-_- 물론 일주일 남짓한 휴가에 항공권으로만 110만원 이상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지 않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여행의 시작은 공항 가는 길부터라고 생각하고, 장거리 비행 자체가 또 흔히 겪어볼 수 없는 일이기에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여행 시작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길에 앉아 엉엉 울뻔. 그렇지만  조금 자고 나니 스트레스도 좀 풀리고 마음도 안정되었다. 역시 스트레스에는 잠이 최고인가? - 이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이번 글에는 패스.


얼마 전, 여행을 통해서 진짜로 나를 발견하고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사진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글을 읽었다. 생각해보니 파리의 에펠탑 앞이 시끄럽고 위험하고 그다지 낭만적이라고 느끼지 않았지만 오래된 지난 사진을 보며 #프랑스#파리#에펠탑#여행#로맨틱#낭만적? ㅋㅋㅋ 하며 기억을 왜곡하며 추억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카메라와 삼각대 대신 2권의 책과 노트북, 다이어리, 잘 나오는 펜을 챙겼다.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재충전의 여행이 될 수 있기를.

Posted by 곰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