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일들로 정신없는 와중에, 그래도 연휴라고 시간을 내어 여유를 조금 가져본다. 원래는 카페에서 조용히 커피 한잔 마시며 쓰려고 했었지만 그것은 여의치 않아 몇명 없는 연구실 자리에서 끄적.



대통령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왔다. 지난 대선 때는 특정 후보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특정 후보가 당선 되는 것이 싫어서 표를 던졌다면 올해는 나름대로 국가의 미래에 대해 고민도 해보고 토론회도 챙겨보며 여러가지 공약과 정책들을 비교하며 고심했다. 사전 투표가 시작되기 하루 전까지도 어떤 후보에게 표를 줄지 왔다갔다 했었으니까. 다음 대선에는 30대가 되어 있을텐데, 그 때는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주에는 면접을 보고 왔다. 우황청심원을 들이킨 덕분인지 나의 최대 약점인, 지나치게 긴장하는 일은 없었지만 (좀 더 철이 들고 나이가 들어서인지 뻔뻔해지기도 했고) 여러모로 다시 한번 그동안의 생활을 정리하고 돌이켜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은 교수였는데, (물론 지금도 누가 시켜준다면 마다할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구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적당한 명예와 경제력, 자유로운 시간 활용, 연구도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학생들도 가르칠 수 있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되어서 막연히 교수를 꿈꿨던 것 같다. 그래서 학부 마지막 시기에 남들이 의사, 검사, 변호사 등 소위 말하는 '사짜 직업'을 준비하고 할 때에도 조금은 나이브한 생각으로 막연히 잘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버텼던 것 같다. 석사과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학사로는 가방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서였기도 하지만 사회생활이란 것이 막연하게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어렸을 때 가졌던 교수라는 직업의 꿈은 영영 멀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이자 도전으로서 어렵게 시작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이런저런 슬럼프가 있었다. 특히 지난 겨울부터 올해 봄, 겨울방학을 지나면서는 소위 말하는 '내가 이러려고 대학원에 진학 했나...' 할 정도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연구에 대한 의욕도 없었고, 잘 풀리는 것도 아니었으며 손절하고 나가기에는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위 중도 포기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 남들에게는 '석사하면서, 박사를 할지 말지 생각해 보겠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입학 할 때는 '박사까지 해야겠다.' 고 생각하고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낼 수 있도록, 나 자신이 나약해 질 때마다 상기시켜달라는 말도 누군가에게는 했었다. 학사 때는 막연하게 '석사는 그냥 2년 지나면 자연스럽게 받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을 반성했고...ㅋㅋㅋ 그런 의미에서 이미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한, 많은 친구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방황아닌 방황을 하고 있는 동안 일찍 취업한 몇몇 친구들은 사회에 어느 정도 자리도 잡고, 결혼도 하고 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나갈까 말까'의 고민보다는 이미 반이 넘는 시간이 지났기에, '잘 마무리 하고 나가자.'는 생각으로 굳혀졌다. 제출 마감일까지 200일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는데 꽤 오랜 기간 슬럼프를 겪었기에, 이 기간동안 남들 하는 것의 2배 이상을 해야 비슷한 성과를 내서 겨우 졸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내 학위 논문이 어딘가에서 냄비 받침이나 모니터 받침으로 쓰이는 건 싫으니까.


면접에서는 역량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과와는 별개로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있게 말하지만 학부 4년간 배웠던 것, 공부에 투자한 시간보다 지난 1년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투자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 연구의 필요성이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 디펜스를 잘 하지 못한건, 나도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뭔가 연구에 큰 꿈이 있어서 오랜 고심 끝에 이 주제를 잡은 것이 아니었고 일단은 학위 과정 중에 연습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팅 할 때 교수님이 '네 연구' 라고 말씀 하실 때 마다 '이게 진짜 내껀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 피식 웃은 적도 있었다.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애착이 없고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득할 수 있을까. 좀 더 깊이 고민 해보고, 진짜 디펜스 때까지 답을 찾아 나갈 수 있기를.


학위 과정의 반 이상이 지나 그간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일들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운 것이 많기에 대학원 진학 자체는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만들어져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지식을 만들어나가는 일의 차이를 알게 되었으며, 연구라는 것의 진행 흐름과 논리적인 연결, 무엇인가 영어로 된 정보를 찾는 일은 나에게 이제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일과 생활, 인간관계를 병행하는 일, 체력 분배, 그 외 기타 자기계발 및 시간 관리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부족한 것이 많아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기에 그 모든 것을 완벽히 할 수는 없지만, 차차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면접을 본 이후로 특히 연구와 졸업, 그리고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있어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리고 그런 여유를 갖는 것도 지금 이 상황의 나에게는 사치라는 생각을 한다. 점심 시간에 커피 한잔 하는 것, 수업 가기 전 15분 잠시 낮잠을 청하는 것, 일주일에 두세번 운동을 하는 것, 퇴근 길에 음악을 들으며 캠퍼스를 걷는 것과 같은 소소한 여유가 내가 허락한, 내가 누릴 수 있는 여유의 전부다. 그렇게 즐기던 맥주도 피치못할 일이 아니면 다음날 생각에 마시지 않게 되었고, 방에서 뒹굴대며 아무 생각 안하기도, 좋아하던 여행도 당분간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회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녹록치 않았다. 동료가 졸업준비와 취업준비를 병행하며 스트레스 받아하는 모습을 보며, 원하는 회사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얻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일과 휴식의 밸런스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지만, 가끔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그 휴식을 반납하고 일을 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긴긴 연휴에도 연구실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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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