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일상을 포스팅하는 새 블로그로 이사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본가인 이 곳에는 오래간만에 접속해서 글을 쓴다. 블로그를 만든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비해 글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은 무언가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여 맞춤법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다시 읽고, 포스팅의 정보가 적거나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는 완전히 컨텐츠가 갖추어질 때까지 글을 임시 저장 상태로 두곤 했다. 그리고 임시저장 상태의 글은 30일 후면 자동적으로 사라지게 되는데, 아마 그렇게 사라진 글의 수도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꽤 될 것이다. 직업이 전문 블로거도 아니고, 많은 시간을 내서 글을 쓰고 사진을 편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나로서는 그렇게 사라져가는 나의 기억들과 감정들 그리고 한 때는 공유하고 싶은 정보들이 많았기에 너무나 아쉬웠다. 그런 마음에 좀 더 가볍게 SNS처럼 쉽게 써서 넘겨버릴 수 있는 새 블로그로의 이사를 결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을 완전히 떠나 버릴 수 없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는데, 새 일기장을 샀다고 해서 전에 쓰던 일기장을 버리지 않는 것처럼, 그간의 추억과 한 때 매우 고심해서 정했던 도메인인 곰지하 - gomjiha - 에 꽤 큰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연구실 생활에 좀 더 익숙해지고,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생활에 완전히는 아니지만 적당히 적응해 버린 것 같다. 처음에 운동을 시작할 때는 더 피곤해져서 정말 꼭 해야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적당히 체력도 붙어서 예전보다 덜 피로감을 느끼고 하는 일도 그럭저럭 재미가 있다. 내년이면 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또 그 때가 되면 지금처럼 정신없고 바쁜 이 생활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공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여학생 간담회에 다녀왔다. 메인 주제는 '여교수가 되자.'였는데, 포닥을 마치고 바로 교수가 되신 분들도 있었고, 회사나 정출연에서 10년 넘게 일하시고 교수가 되신 케이스도 있었다. 석사 학위로 일단 과정을 마치기로, 지금의 이 생활이 싫어서 도망치듯이 결정한 나로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있어서 이런 상태로 공부와 연구를 지속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고, 일단 사회 생활을 경험해 보며 내가 정말 꼭 풀어보고 싶은 문제, 그런 연구 주제가 생기면 박사 학위에 도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걱정 되는 것은 일단 사회로 나가서 어느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런 모든 것을 버리고 학위를 위해서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올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건 그 때 가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음이 복잡하다. 양파 같기도 하고 마늘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나를 가끔이나마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은데. 이제 100일 남짓한 시간 동안에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로 하고, 이런 마음들은 그간 사라진 수많은 내 블로그의 글들처럼 구석 어딘가에 임시 저장 해 두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실험하러 갈 시간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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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의 무게


처음 정장을 입었던 날이 생각난다. 날씨가 꽤 쌀쌀했던 가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첫 정장을 입는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기도 했던 것 같다. 백화점에서 정장을 사서 수선집에 가서 내 몸에 맞추어 줄이고, 그 옷을 입은 내 모습을 거울로 비추어 봤을 때 어딘지 모를 어색함만이 가득했었다.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나서 그때의 세세한 감정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진정으로 옷의 주인이 되진 못했었다. 아무것도 묻으면 안 될 것 같은 흰색 블라우스에 무릎 살짝 위로 올라오는 검정 치마, 그리고 구김이 갈세라 빳빳하게 다려 입었던 재킷과 8센티미터 남짓의 검정 구두. 모든 것이 나에겐 부담이었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고, 벗어나고 싶었다. 마치 엄마 옷을 몰래 입은 사춘기 소녀인 양, 겉은 어른의 행색을 하고 있었지만 속은 너무 여렸던 그런 사람이었다.


요즘은 정장을 입는 날들이 즐겁다. 물론 아직도 정장을 입는 날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제는 내 옷처럼 많이 자연스러워졌고, 옷으로 인해서 말과 행동 하나하나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이제야 정장의 무게를 감당할만한 '진짜 어른이 되었나?' 싶다. 언젠가 돈을 벌게 된다면 좋은 곳에 가서 부모님께 양복 한 벌을 맞춰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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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지하

여러가지 일들로 정신없는 와중에, 그래도 연휴라고 시간을 내어 여유를 조금 가져본다. 원래는 카페에서 조용히 커피 한잔 마시며 쓰려고 했었지만 그것은 여의치 않아 몇명 없는 연구실 자리에서 끄적.



대통령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왔다. 지난 대선 때는 특정 후보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특정 후보가 당선 되는 것이 싫어서 표를 던졌다면 올해는 나름대로 국가의 미래에 대해 고민도 해보고 토론회도 챙겨보며 여러가지 공약과 정책들을 비교하며 고심했다. 사전 투표가 시작되기 하루 전까지도 어떤 후보에게 표를 줄지 왔다갔다 했었으니까. 다음 대선에는 30대가 되어 있을텐데, 그 때는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주에는 면접을 보고 왔다. 우황청심원을 들이킨 덕분인지 나의 최대 약점인, 지나치게 긴장하는 일은 없었지만 (좀 더 철이 들고 나이가 들어서인지 뻔뻔해지기도 했고) 여러모로 다시 한번 그동안의 생활을 정리하고 돌이켜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은 교수였는데, (물론 지금도 누가 시켜준다면 마다할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구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적당한 명예와 경제력, 자유로운 시간 활용, 연구도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학생들도 가르칠 수 있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되어서 막연히 교수를 꿈꿨던 것 같다. 그래서 학부 마지막 시기에 남들이 의사, 검사, 변호사 등 소위 말하는 '사짜 직업'을 준비하고 할 때에도 조금은 나이브한 생각으로 막연히 잘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버텼던 것 같다. 석사과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학사로는 가방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서였기도 하지만 사회생활이란 것이 막연하게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어렸을 때 가졌던 교수라는 직업의 꿈은 영영 멀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이자 도전으로서 어렵게 시작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이런저런 슬럼프가 있었다. 특히 지난 겨울부터 올해 봄, 겨울방학을 지나면서는 소위 말하는 '내가 이러려고 대학원에 진학 했나...' 할 정도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연구에 대한 의욕도 없었고, 잘 풀리는 것도 아니었으며 손절하고 나가기에는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위 중도 포기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 남들에게는 '석사하면서, 박사를 할지 말지 생각해 보겠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입학 할 때는 '박사까지 해야겠다.' 고 생각하고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낼 수 있도록, 나 자신이 나약해 질 때마다 상기시켜달라는 말도 누군가에게는 했었다. 학사 때는 막연하게 '석사는 그냥 2년 지나면 자연스럽게 받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을 반성했고...ㅋㅋㅋ 그런 의미에서 이미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한, 많은 친구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방황아닌 방황을 하고 있는 동안 일찍 취업한 몇몇 친구들은 사회에 어느 정도 자리도 잡고, 결혼도 하고 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나갈까 말까'의 고민보다는 이미 반이 넘는 시간이 지났기에, '잘 마무리 하고 나가자.'는 생각으로 굳혀졌다. 제출 마감일까지 200일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는데 꽤 오랜 기간 슬럼프를 겪었기에, 이 기간동안 남들 하는 것의 2배 이상을 해야 비슷한 성과를 내서 겨우 졸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내 학위 논문이 어딘가에서 냄비 받침이나 모니터 받침으로 쓰이는 건 싫으니까.


면접에서는 역량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과와는 별개로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있게 말하지만 학부 4년간 배웠던 것, 공부에 투자한 시간보다 지난 1년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투자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 연구의 필요성이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 디펜스를 잘 하지 못한건, 나도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뭔가 연구에 큰 꿈이 있어서 오랜 고심 끝에 이 주제를 잡은 것이 아니었고 일단은 학위 과정 중에 연습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팅 할 때 교수님이 '네 연구' 라고 말씀 하실 때 마다 '이게 진짜 내껀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 피식 웃은 적도 있었다.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애착이 없고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득할 수 있을까. 좀 더 깊이 고민 해보고, 진짜 디펜스 때까지 답을 찾아 나갈 수 있기를.


학위 과정의 반 이상이 지나 그간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일들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운 것이 많기에 대학원 진학 자체는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만들어져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지식을 만들어나가는 일의 차이를 알게 되었으며, 연구라는 것의 진행 흐름과 논리적인 연결, 무엇인가 영어로 된 정보를 찾는 일은 나에게 이제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일과 생활, 인간관계를 병행하는 일, 체력 분배, 그 외 기타 자기계발 및 시간 관리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부족한 것이 많아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기에 그 모든 것을 완벽히 할 수는 없지만, 차차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면접을 본 이후로 특히 연구와 졸업, 그리고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있어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리고 그런 여유를 갖는 것도 지금 이 상황의 나에게는 사치라는 생각을 한다. 점심 시간에 커피 한잔 하는 것, 수업 가기 전 15분 잠시 낮잠을 청하는 것, 일주일에 두세번 운동을 하는 것, 퇴근 길에 음악을 들으며 캠퍼스를 걷는 것과 같은 소소한 여유가 내가 허락한, 내가 누릴 수 있는 여유의 전부다. 그렇게 즐기던 맥주도 피치못할 일이 아니면 다음날 생각에 마시지 않게 되었고, 방에서 뒹굴대며 아무 생각 안하기도, 좋아하던 여행도 당분간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회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녹록치 않았다. 동료가 졸업준비와 취업준비를 병행하며 스트레스 받아하는 모습을 보며, 원하는 회사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얻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일과 휴식의 밸런스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지만, 가끔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그 휴식을 반납하고 일을 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긴긴 연휴에도 연구실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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